2026년 3월 28일 토요일

어찌저찌 살다보니 호주까지 왔습니다. - 근황 and 근황

안녕하세요. 주인장 입니다.
근래… 너무나도 바빠서 결국 저번주 한주는 그냥 쉬어 버렸군요… 하하하
이것이 유학생의 고통 아니겠습니까? 쪽지 시험이 왜 이리 많은지… 하여간…
그 와중에도 이래저래 먹고, 산책하고….
아무튼 근황 이야기… 라고는 하지만 거진 리뷰에 가까운 포스팅 시작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장어 덮밥 입니다. 그것도 집에서 만들어 먹은…
물론 장어를 생물을 사서 만든것은 아닙니다만… 아시안 마트에서 약 12불? 정도에 한마리를 팔고 있더군요.
덕분에 바삭하게 구워서 먹은… 제 저녁 이었습니다.
하지만, 가격대가 가격인 만큼, 생각보다 비린내가 조금 있는 편 이었습니다. 맛있게 먹은것은 좋은데, 포장지 사진을 제가 어딘가에 갔다 팔아 먹었나 봅니다… 보이지가 않네요…


그리고 아실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만년필이나 필기구를 모으는게 취미인 사람입니다.
호주까지 들고온 만년필이 대략 40자루 정도가 되는데, 그 중에 절반이 닙마름이 너무 심해 결국에는 세척후 보관을 할 처지가 되었지요…
이곳에 펜샵에도 문의를 해보니, 호주라는 나라 자체가 엄청나게 건조한 날씨라… 스크류캡 종류의 만년필 같이 밀폐성이 좋은 만년필을 사용하는것이 좋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웬만한 만년필들은 닙마름을 견딜수 없는… 그런 곳 이었던 것 입니다…




그리고 판다마트라는 곳도 다녀왔습니다.
인스타에 약간 오프라인 버전 테무라고 하여 다녀와 보았는데… 뭐랄까… 날잡고 한번에 와라라 살것이 아니면 굳이? 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더군요…
가격이 저럼한것은 맞습니다만.. 위치가 제게 있어서는 너무 멀더군요… 거진 1시간 거리…

구글 지도

학교에 필요한 잡다한 자재들을 사기는 하였습니다.
가격이 확실히 일반적인 호주의 매장 보다는 저렴하다는 기분은 듭니다. 다만… 거리가 가까우신 분들은 좋을듯 합니다만… 저같은 1시간씩 걸리는 분들은… 굳이?라는 생각 이기는 합니다.


Mother입니다… 에너지 드링크 입니다… 예…
저도 처음에 이름을 보고 놀란 기억이 여전히 있습니다… 음료 이름이 어머니…
다른 한국분들의 비유로는 한국의 맘스터치나… 엄마손파이 같은 결의 음료로 보면 된다고 하더군요…
하긴… 엄마손파이를 직역하는 순간 여러가지 의미로 위험해지니 말이죠…


Docklands 쇼핑몰에 있는 젤라또 집의 젤라또 입니다.
호주에 오게되면 생기는 병 3가지가 있습니다. 호주 날씨 차원이 달라 병, 호주 농산물, 육류 차원이 달라 병, 호주 젤라또 차원이 달라 병…
저도 예전에 워홀이 끝나고, 이 젤라또들이 그리워 한동안 맛있는 젤라또 집을 찾기 위해 서울 시내 곳곳을 뒤져본 기억이 나는군요…
하지만… 현지의 젤라또 맛은… 정말 차원이 다릅니다… 여러분도 호주에 방문하시면, 꼭 드셔보십시오..

참고로 저 젤라또는 두가지맛 컵, 7달러? 정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약간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만, 일단 양이… 상당히 많구요… 무엇보다 맛이 엄청나게 진합니다.. 정말 차원이 달라요…


마일로 입니다. 호주의 국민 코코아라고 하는 마일로… 솔직히 맛은… 뭐랄까… 코코아 가루에 미숫가루 한스푼 첨가…?라고 할까요… 약간 구수한 맛이 많은 그런 코코아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름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뿌려 먹고, 겨울에는 따뜻한 우유에 녹여 먹는 편인데요.
여름에는 시원하게 마시고 싶지만, 마일로가 차가운 우유에는 죽어도 녹지 않기에… 저는 그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뿌려서 먹는 편 입니다…


아무튼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 입니다…
저는 이만… 과제의 노예로 다시금 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흑…















2026년 3월 12일 목요일

어찌저찌 살다보니 호주까지 왔습니다. - 평범한 근황 이야기

 
안녕하세요. 주인장 입니다…
지난번에 올린 단편을 올린 이후에는 그다지 별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대학생… 이 나이에 대학 생활을 하려다보니 낡고 지친것 뿐입니다… 하하하하… 
내 나이 한국나이 28살… 호주나이 27살.. 이 나이에 대학 생활이라니… 
그래도 이제 곧 이스터데이, 그러니까 부활절이라 쉬는날이 많아 기대 중 입니다.


그리고 그 이스터데이를 기념하여 나온 빵… 크림 롤빵 입니다.
저번의 젤리롤을 너무 달아서 절반 정도 밖에 못 먹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호기심으로 또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멍청이 블로그 주인장 입니다.
가격은 3.5달러? 정도 되었던거 같은데, 생각보다는 가격이 조금 나갔습니다.
맛은… 뭐랄까요… 어르신들이 좋아할만한 맛? 이라고 말하면 편할까요? 그런데 아마 어르신들도 동시에 싫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맛이 묘해요…
시나몬 맛이 나는데…. 흔히들 아는 시나몬 슈거 맛은 아니고… 뭔가… 묘한 한약 맛이 나는것이…
향신료가 들어간 빵이라고 설명은 들었는데, 묘한 맛의 빵 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마트에 파는 헬로 판다라는 과자 입니다.
한국의… 뭐죠… 칸쵸와 굉장히 비슷한 과자인데, 뭐랄까… 그냥 칸초 입니다.
모양만 다른, 하지만 가격이 4달러가 넘는… 호주에서 아시안 과자를 먹는다는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딱히 두번 사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맛이 분명 카라멜 크림이라고 하였는데 카라멜맛이 크림보다 많은 비슷켓 양에 묻히는 느낌이 너무나도 강합니다. 굳이 한번더 사먹을거 같지는 않습니다.


분명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까먹은 한국의 초코송이의 원본이라는 과자 입니다.
주변의 다른 분들은 그냥 죽순 과자라고 부르던데, 아무튼… 이번에 50주년이라서 나온건지 아니면 제가 처음 본건지는 몰라도, 전철역 근처에 아시안 마트에서 발견한 말차맛 죽순 과자 입니다.
맛 자체는 평범 하였습니다만, 초코량이 상당히 많게 느껴졌고, 생각보다 덜 달아서 좋았습니다.
가격만 좀 덜 사악하면 더 사먹었을것도 같은데, 가격이 거진… 5-6달러?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아무리 수입 과자라지만 이건 너무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가격 입니다.


다음으로는 달달한 고구마를 너무나도 먹고싶어… 대체품으로라도 구매한 고구마맛 페스츄리 과자 입니다.
뭐랄까… 분명 8달러인가를 주었는데, 그 가격만큼의 맛이 안 나는 느낌의 과자 였습니다.
한국의 엄마손 파이에 고구마 향 한방울 첨가?의 느낌 이었습니다.
고구마 맛이라고 생각 안 하고 그냥 무난한 엄마손 파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먹을만 합니다만, 고구마 맛 이라고 인지를 하고 먹으면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낌이 드는 그런 묘한 맛 입니다.
역시 두번은 안 먹을거 같습니다. 누가 사주면 몰라도… 허허


이번 근황 보고의 마지막 음식으로 장어 덮밥 입니다.
아시안 마트에 가시면 대략 10달러 정도에 이런식으로 장어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있는 제품이 있습니다.
물론 가격대를 생각하면 자주 먹지는 못할 그런 음식 이지만, 적당하게 먹을만한? 데리야끼 소스 베이스의 장어 구이 입니다.
생각보다 싱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호주에서 장어 덮밥이라니, 10달러의 행복이라 생각하면 먹을만 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치약 입니다.
튜브형이 아닌 누르면 나오는… 방식의 치약 입니다. 심슨 콜라보라고 호기심에 구매를 하였는데,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역시 두번은 구매를 하지 않을거 같습니다.
가격도 10달러에 양은 50미리 정도의… 치약… 심지어 너무 달아요.
아마 어린이용 치약이라 이렇게 만든거 같은데, 포도맛에, 묘하게 상쾌한 기분이 안 드는 그런 치약 이었습니다.
그런데… 심슨이 어린이가 볼수 있는 만화 였나요…?


아무튼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까지 입니다.
근래에는 학교에서 과제도… 쪽지시험도 너무나도 많은 편이라 피곤에 절여져서 살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그나마 건강한 모습으로… 블로그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2026년 3월 6일 금요일

6개의 손가락

 내게는 특이한 친구가 한명있다. 나와 그 친구는 흔히 말하는 소꿉친구, 그러니 유치원 때부터 늘상 붙어 다녔던, 그런 관계의 친구라고 할수있다. 그 친구는 늘 생물에 관심이 많았다. 유치원때는 놀이터에 돌아 다니는 개미나 메뚜기를, 초등학교떄는 근처 숲에서 자주 보이던 다람쥐나 청설모를, 지금은 진화 생물학자를 꿈꾸는 고등학교 3학년의, 다윈이 영원한 자신의 우상이라 말하는 큰꿈을 가지는 그런 친구이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한가지 약간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친구는 언제나, 늘상 인간의 손가락이 왜 6개인지 이해를 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친구들, 심지어는 과학 선생님까지 붙어 인간의 손가락이 왜 6개인지 이해를 시키려 노력하였으나, 친구의 의구심은 날로 늘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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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의 ‘인간의 손가락은 왜 6개인가?’라는 질문의 시작점은, 우리가 막 중학교로 진학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아간다. 친구와 나는 도서관의 지박령이라 불릴만큼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였는데, 친구와 나는 초등학교 도서관과는 다른, 꽤나 다양한 책들에 빠져 살던 때였다. 나는 그 나잇대 아이들이 으레 그러듯이, 나 또한 온갖 판타지나, 로맨스 소설에 빠져 있었지만, 친구는 나와 다른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듯 도서관에 있는 생물학에 관련된 모든 책들을 섭렵하고 다녔다. 어느날인가, 아마 초여름의 도서관 이었을 것이다, 다들 더위를 피해 도서관에 밀려드는 날 이었으니 말이다, 친구는 한권의 책, 아마 인간의 진화의 대해 대학교 논문만큼이나 어렵게 설명한 책 이었을 것이다, 책을 나에게 들고와 한페이지를 펼쳐 나의 얼굴에 들이 밀었다. 그 페이지의 내용은 인간이 왜 손가락이 6개인지의 대한 꽤나 상세하게 서술한 페이지 였다. 나는 도저히 중학생 수준으로 보이지 않는 다양한 전문 용어들과 사과, 바나나같은 단어들만 아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워 보이는 영단어들에 울렁거림을 느끼며, 뭐가 문제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처음 보는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무기의 발달이 손가락 갯수의 영향을 주었다고?‘라고 말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한 점들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물론 겨우 중학생 이었던, 그리고 생물학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는 별달리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친구는 이후로도 다른 친구들이나, 과학 선생님과도 열띤 토론을 이어갔지만, 그다지 소득은 없이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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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친구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다지 변하지는 않았다. 조금 더 많은 공부를 하였다는것 정도? 친구는 언젠가 하였던, 진학 상담에서 결국에는 생물학을 전공하는 방향으로 키를 돌렸다.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 우리는 각자의 목표를 위해 수능을 준비하였다. 수능날, 우리는 각자의 목표를 향해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수능을 치루었고, 점수가 나올때 까지는 꼼짝없이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니, 시험이 끝났지만 여전히 긴장을 놓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한달정도 흘렀을까, 친구는 밝은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생물학과로, 나는 영어영문학과로, 나와 친구의 대학은 달랐지만, 거리상 꽤나 가까웠기에 자주 만날수 있을거라는, 시시콜콜한 기대와 걱정들을 오랜시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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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생활은 꽤나 바빴기에, 우리는 나누었던, 자주 만나자는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청춘을 연료로 대학 생활을 힘겹게 항해 하였다. 자주 만나지는 못 하지만, 문자나 전화는 자주 하였기에 별별 사소하고 시시한 일상까지, 마치 같이 사는듯이 서로가 서로의 일상을 알수 있었다. 친구는 여전히 6개의 손가락의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는 못 하였는지, 레포트나 과제에 그런 의구심이나 자신의 생각을 적어 제출 하였다가 크게 점수를 깎아먹은 적도 있었다. 평소에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어쩔려고 하였는지, 다행이도 평소의 행실이나, 시험 점수가 좋아 적어도 제적은 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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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무사히 졸업을, 잔잔이 몇가지 사건사고들이 있었지만, 성히 학교 생활을 끝내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친구는 졸업 후 더욱더 다양한 연구를 위해 해외로 유학을 간다고 이야기 하였다. 졸업을 한것이 한것이 아닌거 같다고 이야기하자 친구는 깔깔 웃으며 나의 등을 퍽퍽 쳤다. 어쩃거나, 우리는 졸업을 하였고, 친구는 해외로, 나는 취준생으로써의 또다른 험난한 항해가 보였기에, 우리는 대학생의 마지막을, 지난 시간의 후회를, 앞으로의 걱정을, 미래의 기대를 하늘로 날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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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의 전공을 살려 어느 학원의 선생이 되었다. 활발한 중, 고등학생의 원생들을 보며, 친구와 함꼐한 지난날의 기억들을 슬며시 웃으며 곱씹었다. 친구는 해외의 연구 생활이 썩 마음에 드는 듯, 졸업 이후에 해외로 나가서는 지난 몇년간 한국에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한편으로는 서운 하였지만, 친구의 지독하다고 말할수 있는 열정에 마음 깊이 응원 하였다. 친구는 종종 전화를 하여, 자신의 연구들, 주변의 연구원들, 자신의 일상들, 작디작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몇시간 동안 수다를 나누었다. 지금은 ‘인간의 손가락은 5개가 옳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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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만에 친구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학계에서는 꽤나 논란이 되었고, 한국의 생물학계에서도 발칵 뒤집어 졌다나보다. 친구의 말로는 예전 대학교의 담당 교수에게서도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하기야, 다른 어떤 생물학 논문에서도 인간의 손가락의 대해, 그것도 갯수에 대해서 반박하는 논문은 전무하였으니 말이다. 친구는 웃으면서도 한동안은 여기저기서 오는 항의 메일을 처리 해야 한다는 말을 한숨과 함께 하였다. 아마 전세계의 연구자들과 종교인, 심지어는 일반인 에게도 항의 메일이 온다니, 꽤나 고생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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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일인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는 자신의 연구를 뒷받침 할수있는 고고학적 사료가 있을거라 추정되는 동굴에 탐사를 간다는 말을 하였다. 아직은 비공개인 동굴 이기에 뭐라 상세하게 말할수는 없지만, 반드시 자신이 인간의 손가락은 6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 하겠다며, 밝고 힘찬 목소리로 나에게 재잘 거렸다. 나는 친구에게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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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내가 친구가 그 동굴에서 못 돌아 올것을 알았다면, 가겠다는 친구의 엔진을 강제로 꺼버릴수 있었을까? 친구는 돌아오지 못 하였다. 동굴에서의 실종, 하필 친구와 동료 연구원들, 그리고 동굴 탐험대가 들어가고 2-3시간 사이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산사태와 더불어, 토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동굴이 무너졌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번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탐사 이었기에, 생존자 혹은 시체를 찾는거 조차 기대를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 이었다. 친구는 그렇게, 그렇게 나의 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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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친구와 다른 이들은 찾지 못 하였다. 1년이 넘는, 오랜 시간의 탐사에도 불구하고 시체는 커녕 흔적조차 찾는것이 힘들었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친구의 이름이 적힌 작은 수첩 하나, 그것이 친구가 세상에 존재 하였다는, 이 세상을 떠 다녔다는 유일한 증거로 세상 밖으로 올려졌다. 수첩에는 살아생전, 연구를 하였던 흔적이, 동굴 밑에서의 죽음의 공포들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친구의 장례식은 간소 하였다. 관에는 그 무엇도 없는, 작은 사진 한장과 친구의 가족들이 들고온 친구의 물건들로 채워졌다. 나는 수첩을 넣으려 하였지만, 친구의 가족들은 수첩을 이용해 친구의 연구를 누군가 이어갔음 하는 바램에, 친구의 수첩과 친구의 지난날의 연구들은 나에게로 임시적으로 나에게 모두 건내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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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친구의 흔적들을 보기 어려워, 상자에 담아 깊숙이, 친구의 기억과 함께 깊숙이 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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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그 동굴은 탐사가 어려워 지난 날보다 채 20m도 더 탐사되지 못 하였고, 더 이상의 탐사는 시간 낭비라 생각한 후속 탐사대와 구조당국은 출입 금지 표지판만을 세워둔채 그곳에서 떠나 버렸다. 나는 깊숙이, 오래, 긴 시간 동안 묻어 두었던 친구의 작은 수첩과 연구들이 들은 상자를 꺼내었다. 퀴퀴한 먼지가 가득 했음에도, 여전히 친구가 옆에서 손가락에 대해 재잘거리며 떠드는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친구의 수첩을 다시금 펼쳐, 다시금 꼼꼼히 읽기 시작 하였다. ‘00월 00일 00시 탐사 시작‘, ’00구역 지나감, 초기 인류의 흔적들을 발견, 후의 재탐사를 위한 지도 표식.’, ‘동굴 입구 쪽에서 커다란 굉음?’. 굉음이라는 기록 이후에는 친구의 생존의 대한 기록들이 빼곡 하였다. 식량의 잔여양, 식수량과 같은 다양한, 나는 한번에 몇장씩 넘기며 친구의 마지막을, 마지막 장을 향해 달려갔다. 마지막 장에는 단 두줄의 기록이, 급하게 휘갈겨 쓴 듯 몇몇 글자는 알아 볼수 없을 정도였지만, 단어 단어의 순서를 유추하여 나는 읽었다.


 ‘나는 비로서 마지막에 와서야 그것을 발견 하였다. 그래, 분명 6개, 나는 분명 6개의 손가락을 마침내 발견 하였다.’


 친구는, 오랜 시간 인간의 손가락 연구에 매달려온 나의 친구는 마지막에 가서야 인간의 손가락이 5개가 아닌 6개라는 증거를 발견한 모양 이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소용인가, 친구는 저 동굴 밑, 어딘지도 모르는 저 땅속 깊은곳에, 친구가 늘 바래왔던 인간의 6개의 손가락의 증거와 함께 뭍혔는데 말이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수첩은 나의 서랍 깊숙한 곳에 넣었다. 나머지 연구 자료들은 친구의 후배 연구원이라는 이들에게 모두 넘길 생각이다. 6개의 손가락, 늘 친구가 말했던 6개의 손가락. 나는 손을 활짝 펴 천장의 전등에 비추어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총 다섯개의 손가락, 친구가 알아내고 싶었던 6번째 손가락, 이제 그것은 나의 서랍에, 그리고 저 밑 깊은 동굴에 친구와 함께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시간, 공간 그리고 그대

  모두가 나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사고라고, 분명 그대는 좋은곳으로 떠났을거라고, 부디 잘 이겨내라고 말입니다. 그대가 내 곁을 떠나간지 어느덧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9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주변의 많은것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