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1일 수요일

기록에 대하여

 나는 기록을 좋아한다. 이왕이면 오래가는 기록으로, 영원불멸의 기록을 원하기는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내가 가능한 최대한의 노력을 해보곤 한다.


찰나의 순간의 기록들, 모든 지나가는 것들을 붙잡는 기록들, 나는 그런 기록들을 좋아한다.
어쪄면 수십년 후에는 영원히 잊혀질 그런 순간들 말이다. 
시간은 끝없이 흐른다. 누군가 붙잡더라도, 붙잡지 않더라도 말이다. 나또한 그런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아니 그 누구도 자유롭지는 못 하겠지.
그렇기에 끝없이 기록을 남기고 내가 이 세상에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긴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이 다녀갔지만 기억되는 이는 얼마 안 되기에, 누군가는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아날로그식 기록을 좋아한다. 필름 카메라, 수기 등등…
물리적으로 남는 기록들을 좋아하는 편인다. 어느날인가, 아마 3~4년 전쯤 일것이다.
20살의 호주애서 보낸,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보낸 모든 추억이 담긴 클라우드가 사라지는 사건을 겪었다.
지금도 기억한다. 아마 그 당시 5000장이 넘는 사진들이 사라진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불가 일천여장 남짓한 사진만이 남아있다.
아마 그때부터 였을것이다. 내가 아날로그식 기록에 집착을 하게된것이 말이다.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모르지만, 취미가 꽤나, 흔한말로 비싸졌다고 해야하나 고풍스러워 졌다고 해야하나, 나의 취미는 필기구를 모으는것, 그리고 필름 사진을 찍는것이 되었다.
이 얼마나 비싼 취미인가? 필름은 현재는 생산이 되지 않아 한롤에 거진 2만원이 넘어가고, 만년필은 사치품이 되어 아무리 싼것이라도 5만원이 넘어간다.
그럼에도 내가 이러한 것들을 사요하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답은 간단하다.
이 모든것들이 그 가격을 뛰어넘는 가치를 나에게 가져다 준다고 말이다.
만년필로 쓴 나의 일기들은 거진 10년이 다되어가지만 멀쩡하게 유지가 되어있고, 필름 사진의 필름은 이론상 50년은 거뜬히 버틴다.
물론 그 기록들은 오래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은 노력이 꽤나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들이, 그 모든 가록들이 언제가 잊혀질 것들은 안 잊히게 할수만 있다면 나는 기록을 계속하여 할 것이다.

우라는 언제가 사라질것이고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기록들이 나를 그리고 잊혀질 모드것들을 작게나마 기억하게 해준다면, 더할것도 없겠지.


2024년 11월 24일 일요일

근래 한국에서 벌어지는 남녀갈등의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 - 2

 일전에 썻던 녀남갈등의 대한 이야기의 2번째 이야기 입니다.

지난 글을 읽고 오시는것을 추천 합니다

(주의 -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잔뜩 첨가된 글 입니다.)

지난 글에 제가 한국의 녀남갈등은 지금의 세계적인 추세랑은 다르다는 입장으로 글을 쓴것을 보셨을 겁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아마 어느정도 다르다고 알고는 계실거라 믿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끝문단 무렵에 썻던 자연적인 생존의 대한 입장에 관한것만 이번 글에 한번 써보려 합니다.

근본적인 생존에 관한 것부터 보도록 하자면, 우리가 가장 근본적으로 생존에 필요한것은 무엇이냐라고 한다면 아마 의.식.주를 말합니다.
이는 생존에는 필연적인 것이며 인류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 기본적인 것들을 우선시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의 시간대를 한번 50년전으로 되돌아 가보죠.
대략 1900년대 초에서 중반, 한국의 정세는 혼란 스럽습니다. 광복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기인데 한국전쟁이라는 크나큰 폭풍을 맞이하고, 온갖 사회기반이 무너져, 오늘 웃으며 보았던 이웃이 어느날 굶어 죽어있던, 어느날 사라지던 하는것이 당연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에서는 당장의 생산이, 노동력이 급하던 시절 이었지요.
이 당시에는 1차 산업 위주의 산업이 주력 이었으므로 힘을 잘 쓰는 남아가 선호가 되던 시절 이었습니다.
190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의 주된 산업은, 철강, 광업, 농업, 중공업 같은 일들은 대부분 남성들의 차지 였습니다.
그에비해 모직업과 같은 경공업은 여성들이 위주였다고 볼수있죠. 이 당시 까지만 하더라고 남성의 생산력, 그러니까 돈을 잘 버는 직종은 대부분이 남성이 차지하였다고 볼수가 있는겁니다.
물론, 이 시대의 경공업을 지탱한 여성들의 노동을 폄하 하는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당시의 시대에는 돈을 잘 벌어오는, 중공업에 쉽게 들어갈수 있는 남성이 우대를 받던 시절 입니다.

여기서 누군가가 의문을 표할수 있습니다. 왜 생존에 관한 의.식.주를 이야기 하면서 갑자기 한국의 역사를 들먹이며, 경제 발전의 수순을 이야기를 하고 있냐고 말이죠.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지금 현재, 그리고 근현대의 사람들은 과거의 우리의 선조가 그러했듯이 산에서 들에서 식량을 구하던 세대가 아니라는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겁니다.
과거의 우리의 생존을 위해 수렵과 채집 농사를 했다면 지금의 우리는 생존을 위해 돈을 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자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본론이 나옵니다. 우리의 생존 수단은 변화 하였다.

그러면 이제 현재로 돌아옵시다.
2000년대, 한국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굉장히 늘었습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남성이 홀로 벌어 홀로 가정을 유지하는것이 어려운 시대 입니다.
과거에 비유하며 말하자면 이제 사냥을 남성 홀로 하는것이 아닌 여성도 같이 한다고 볼수 있는겁니다.
무엇보다, 이제 여성이 사냥을 할수있다는 것이 증명이 되며 남성에게 소속되지 않고, 홀로 살아가거나 혹은 본인의 능력과 비견되는 남성을 찾는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라 볼수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집단을 이루어, 그리고 더 나은 생산력을 위해 분업이 되었는데, 과거에는 남성은 노동과 집단 보호, 여성은 노동력 생산과 가정 보호라는 의무를 지었다고 볼수 있는데, 현재로는 이런 분업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은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여 생존을 도모할 필요가 없으며, 남성의 노동력 없이 스스로 자력생존이 가능한 시대이기 떄문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 이제 여성의 자력생존이 가능하니 남성이 생존에 꼭 필요한것이 아닌것은 알겠다. 하지만 인간의 자기복제 본능은 당연한건데 지금의 사태는 어떻게 설명을 할것이냐? 라는 겁니다.
그래요. 이론적으로는 자기복제본능, 그러니까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자식을 가지는것, 지극히 당연하게만 느껴지는 본능 입니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 모두를 보며 한국의 상황은 정말 다르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한국의 남성중심 사회는 오랫동안 유지가 되어왔습니다. 
남아를 못 나으면 첩을 들이는 과거의 모습을 보면 알수 있듯이 말이죠.
근현대로 돌아와 1900년대 중반의 우리들의 부모님, 조부모님의 모습을 봅시다.
이 당시에도 모습이 언듯 비슷해 보입니다. 남성이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거나 하는 가사일을 하는…
이 당시에는 문제가 그다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앞서 말했듯이 돈을 잘 벌어오는 것은 남성 이었으며, 과거의 잔재가 남아있어 집안을 유지 시키는 것은 남성이라는 암묵적, 사회적 동의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시의 우리 어머님 그리고 조모님의 모습을 보면 이처럼 비참할수는 없습니다.
매맞는 아내, 아들을 못 낳는다며 쫒겨나는 아내, 집안의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미싱 공장으로 몰리는 누나
이 시대의 문학을 조금만 보더라도 흔하게 나오는 모습 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라온 우리의 어머님, 누님, 친구들이 현재의 우리들의 주변에 있는 여성들 입니다.
그것은 과거일 뿐이며 다른 나라들도 그러한 과거가 있지않냐?라는 말을 하실수도 있습니다.
과연 다를까요?
아들을 못 낳는다며 욕먹는 어머님, 남형제에게 밀려 차별대우 받는 딸들, 남성 위주의 채용에 밀려나는 여성들
여전히 우리는 남성주의적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 여전히 과거에 머문 늙은 분들을 몰아내자! 이런 주장이냐? 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계실수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대에 발맞춰 따라 와주시면 정말로 고마운 일 입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남성이 최고인 시대에서, 남자가 당연히 가정의 중심, 사회의 중심인 시대에서 살아왔기에 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와같은 20-30대 남성분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때입니다.
지금의 세계는 여성들의 능력이 존중 받아야 하며 인정을 받아야하는 시대 입니다.
이제 사냥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겁니다.
아직 이런 변화를 부정하며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들이 있습니다.
옛날처럼 정보가 부족하여 남성들의 폭정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불만이 있으면 한국을 떠난다는 선택지가 있는겁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부정은 반복하면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끝-

글을 끝내고 사담을 몇자 더 적으려 합니다.
혹시 제글을 보시는 여성분들이 있다면 부디 한국을 떠나시길 바라는 입장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 이지만, 딱히 한국의 남성주의적 사상이 변할거라는 기대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버텨온 사상이기에, 그리고 그러한 사상을 가진 이들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사회적 주류로 유지가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좋은곳은 세계에 꽤나 많습니다. 그러니 부디 한국 사회속에서 본인의 능력을 꽃 피우지 못하고 고통 받지 마시고 부디 저 멀리 당신을 난란하게 비출수 있는 곳으로 떠나시길 바랍니다.

2024년 11월 21일 목요일

근래 한국에서 벌어지는 남녀갈등의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

 미리 결론부터 서술을 하자면 필자는 ‘페미니즘‘을 꽤나 지지를 하는 편이다.

왜 지지를 하냐고 물어보면 별다른 이유는 없다. 단순히 이러한 흐름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막는다고 한들 잠깐의 딜레이는 줄지언정 완전히 소멸 시킬수는 없는 그러한 흐름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인권 향상의 대한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우리 인류가 농경사회나 그보다 더 이전인 신석기나 구석기 시대의 밀렵과 채집을 행하던 시절에는 남성이 사회의 전반적인 노동을 하였으므로 어쩌면 그 당시의 남성 주의적 사상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농경 사회 당시에도 여성의 노동력은 꽤나 컸으니 지금에서야 여성 인권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꽤 늦은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과거와는 비교하여 말도 안될 정도로 증가하였고, 여성이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노동력과 경제력은 과거에 비교하여 무시할수 없는 수준이다. 
자 그러면 결론은 나왔다. ’여성의 인권 향상은 필연적인 것이며 막을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남성들은 마치 페미니즘을 금지된 무언가를 꺼낸거 마냥 행위를 하고있다. 과연 이러한 이유가 뭘까?

(지금 이 밑으로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가 진하게 들어가 있으니 독자분들이 적절히 읽어주고 판단해 주시길 바라는 바이다.)

나 또한 한국의 평범하다면 평범한 20대의 남성으로써, 현재의 남성의 대다수가 주장하는 ‘반페미니즘‘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이들이 왜 이렇게 반대를 할까? 무엇이 그들을 분노하겠끔 만들었는가?
궁금 하였기에, 가장 ‘반페미니즘‘이 극렬한 커뮤니티 ’디씨 인사이드’라는 곳을 잠시간 보았다.
단순한 1차원적인 주장글을 모두 거르고 몇가지 의견들을 취합을 해 보았다. (해당 사이트의 캡쳐본을 삽입을 하려고 하여으나 내용이 너무 저급하여 해당 캡쳐본을 올리지 못한점 양해 부탁합니다.)

1. 여성들은 이미 한국에서 충분히 인정을 받고 있으며, 지금의 ‘페미니즘’은 단순한 여성 우월주의 이다.
2. 대부분의 남성들은 성공을 하여도 흔히 되바라진 여성들과 결혼을 하여 밖에서 일도 하고 집에서는 여성 대신 가사 노동까지 하는 미래를 맞이한다.
3. 한국은 여성보다 남성이 받는 억압과 고통이 심하다. 그러니 남성이 우선시 되어야한다.

이보다 더 자세하게 쓸려면 쓰지만 대표적으로 이 세가지의 이유를 꼽을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것이 사실일까? 이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말하기전에 여성들의 의견들을 보자.
필자는 속칭 트위터리안으로써 대부분의 의견을 트위터에서 보았음을 알아달라.

1. 한국은 여성들에게는 너무 위험하다. 여성 혐오 범죄의 대해서 조금 더 확실하게 처벌해 달라.
2. 여전히 한국은 남녀차별이 심하며, 이러한 차별을 조금씩이라도 줄여서 완전히 없애달라.
3. 한국에서의 여성은 ‘도구’로써 취급이 되어진다. 우리는 도구가 아니다.

여성들의 의견도 당연히 더 자세하게 쓸수는 있지만 여기서 줄여본다.
자 그럼 이렇게 세가지씩 모였다. 

나는 이러한 의견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여성과 남성 둘다 피해자라고 보는 입장이다.
물론, 그렇다고 남성들의 저러한 행태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니다.

남성들이 왜 피해자냐고 물어본다면 어느정도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한국의 남성성의 관한 교욱의 피해자라고 보는 입장이다.
앞에서 밝혔다시피 필자도 한국에 사는 평범한 20대의 남성이다. 이말은 필자도 지극히 당연히 한국식 남성성의 관한 교육을 받았다는 말이다.
한국에서의 남성상은 간단하다. ’남성은 밖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을 해야하고, 대를 이어야 한다.‘
아마 대부분의 20-30대 남성들은 비슷하게라도 들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한줄의 문장이 나는 한국의 남성상을 대표한다고 본다. 남성은 가정의 기둥이며, 당연히 가정을 부양을 해야하고, 당연히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충돌이 일어난다고 본다.
왜 충돌이 일어나는지를 보기전에 한국의 여성상의 대해서 알아보자.

한국의 여성상은 어떠한가?
물론 필자는 여성은 아니기에 주변 친구나, 가족들에게서 들은 간접적인 내용들 밖에 없음에 정확하지 않을수 있다는점 알아주길 바란다.
한국의 여성상은 이 한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여성은 가정에 충실해야하며, 내조를 잘하고 바깥일을 하는 남편 뒷바라지를 잘 해야한다.‘
이 한문장도 한국의 여성이라면 대부분 비슷하게 들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이런한 두 포인트가 녀남갈등의 주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지지하는 나잇대가 어느 나잇대라고 생각 하는가?
다양한 연령들이 있지만 제일 활동적으로 행위 하는 나잇대는 당연하게도 2-30대이다.
왜 20-30 세대가 많은지 생각 해 보았는가? 단적으로는 인터넷과 커뮤니티에 익숙한 세대여서 그럴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것이 보이는데, 바로 이 세대들이 과거의 성별상과 현재의 성별상의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들이기 떄문이다.
너무 당연하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아라, 현재 저 세대의 남성들은 끊임없이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아왔다.
여성은 그 반대의 교육을 받아왔고 말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아오다, 어느날 가정에서 벗어나 사회에 나오니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있다. 이러한 괴리감속에서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다.

더불어, 나는 또하나의 다른 관점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바로 자연법적인 생존의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에서 수렵과 채집 이후에는 농업과도 같은 1차 산업에 종사하며 생존을 하였다.
이들의 생존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을 이야기 해보라 하면 아마 가장 먼저 음식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리 인류는 지난 몇세기 동안 생존을 위해 ’식량’을 구하는것이 1차 목표라고 말할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의 우리의 1차적인 목표는 바로 ‘돈‘이라고 할수있다.
과거에는 남성들이 선발적으로 나가 농업을 하며, 그리고 사냥을 하며 가정을 이끌었고, 사회를 유지 시켰다.
앞서 말했듯 이 당시의 남성주의적 사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의 우리는 단순히 식량을 구하기 위해 농업을 할 필요도, 그렇다고 사냥을 나갈 필요도 없다.
지금의 우리는 ’돈‘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식량을 구하고 우리가 필요한 물건들은 산다.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를 보자.
한국은 불가 4-5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사상이 당연한 시대였다.
일제강점기가 끝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한국전쟁도 끝난지 얼마 안 되었으며, 그러한 1차 산업만을 이용하여 생존을 하던 세대가 떠난지도 얼마 안 되었기 떄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당시에는 노동력도 정말로 많았다. 여성의 노동력은 많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 현재의 한국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 하였다. 그 변화들 속에서 우리는 많은 부작용을 맛 보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저출산, 그리고 엄청난 교육열과 경쟁 이었다.
저출산은 노동력의 지속적인 손실로 이어졌고, 이는 여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를 만들었다.
비단 이러한 이유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 진출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다른 이유가 있지만 지금은 이 한가지 이유만을 말하겠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한국의 남성 중심적 사회의 틀을 조금씩 깨 부섰고, 이는 당시의 유행어만 보아도 알수있듯이 남성들의 강한 반발심을 가져왔다. 당시의 유행어를 보면 ’된장녀‘, ’김치녀’ 등등,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을 하며 그들 스스로의 돈으로 소비하는 것을 두고는 하는 말들 이었다.
간단하게 당시의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세계관이 부서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두번째, 지난친 교육열과 경쟁은 무엇인가?
이는 앞서 말한 한국의 흔한 남성상과 여성상과도 연결이 되는 문제이다.
지금의 20-30 세대들은 대부분 경쟁을 꽤 했을거라 생각한다.
나는 말한다. 이 세대들은 배려하는 방법보다 남들을 밞는 법을 더 잘 배웠으며, 남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남들을 깔고 앉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이다.
이들은 남들을 배려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남성들은 자라오며 자신이 당연히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한 가정의 기둥이 되어 살아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배우고 살아왔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조부모에게 남성주의적 사상을 배우며 살아 왔을거기에 여성이 자신보다 앞선다는 것을 과연 받아들일수 있을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것은 간단하다, 남성들은 남성중심적 사고를 오랫동안 받아왔다. 그리고 경쟁을 통해 당연히 자신들은 사회의 뚜렷한 구성원, 가정의 중심이 되는것이 맞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고, 남성을 압도하는 것들이 많은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한국은 남성들의 파이는 점점 줄어가며 여성들의 파이는 점점 커져가고 있는것인데, 남성들은 자신이 쟁취하지 못한 파이를 단순히 여성들이 편법을 사용하여 빼앗아 간것이라고 합리화를 하고 있을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한국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를 하였다. 이러한 변화에 걸맞지 않은 인문학적 능력은 여전히 오래된 책들 마냥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이런 과거에 머문 이들이 사회의 주류들이며, 여전히 그러한 지식들이 맞다고 사람들에 말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는 능력으로써 인정을 받는 시대이고 여성들의 능력은 무시 못하는 수준의 능력이 된지 오래 되었다.
남성들은 과거의 잔재에서 벗어놔야 하며 여성의 능력을 그리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배려를 해야만 한다.


-마치며-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여전히 한국의 페미니즘의 관한 이러한 흐름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많다.
덕분에 여러 생각들이 섞이다보니 글들이 난잡해 진것도 사실이다.
다음에 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생각들을 한 후 몇번 더 이런 글들을 적어볼 예정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며, 필연적이라 생각하는것은 변하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감히 모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하자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본다고 여러 커뮤니티를 돌아본 결과, 디씨같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극단적인 커뮤의 극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같은 사람이라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들은 정상적인, 이성적인 생각이 결여된 상태이며 오로지 증오와 분노 그리고 혐오만이 가득한 이들이다.
이들과 잠깐이나마 대회를 하려고 하였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부디 이러한 금수들에게 스트레스는 받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이루고자 하는 일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끝마쳤음 하는 바램이다.

-세상 모든 페미니즘 지지자들을 응원합니다.-




2024년 11월 5일 화요일

책 - 군주론 리뷰

제목 - 군주론
페이지 - 256페이지
작가 - 니콜로 마키아벨리
가격 - 6930원



군주론, 여러 리뷰로도, 여러 유튜브 영상으로도 접한 제목만은 확실히 알고있던 책. 하지만 왜인지 나와는 인연이 없어 읽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평생을 안 볼수도 있었던 책이었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철학을 공부하면, 책을 좀 읽었다하면 한번쯤은 읽어봐야 한다는 어느 지나가는 말에 약간의 호승심이 생겨 구매하고는 일주일 동안 완독을 하였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에는 처음에 이 책은 무엇인가? 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처음 들어가는 말로써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군주에게 이 책을 바쳤다는 사실과 함께, 나로써는 약간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그런 인사말이 있기에 처음에는 이것이 군주에게 바치는 책이 맞나?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 이책은 군주를 위한 군주만을 위해 쓴 책이 맞다‘라는 사실을 상기 시키듯, 군주로써 가추어야 하는 처세술, 정치술, 외교술의 관한 내용을 다방면으로 마키아벨리는 써내려간 듯 보였다.
책은 총 26장으로 이루어진 마키아벨리가 생각하는 군주로써 권력을 다루는 법에 대해 설명을 해 나가는데, 만일 이책을 읽을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 당시의 시대상을 같이 보는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나 또한 이 당시의 시대상을 보며 이 책을 보면서 왜 마키아벨리가 이런 글을 썻는지, 왜 이런 생각을 하였는지를 더더욱 잘 느껴진다.
다만, 이책을 읽으며 약간의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보다보면 일부 내용은 자의적 해석이 될만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는것을 알수가 있다.
대표적으로 ‘군주는 자애롭고 도덕적인 군주가 아니라 냉혹하고 잔인해야 한다.‘ 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현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다는것을 누구든지 알것이다.
하지만, 만인 자아가 비대한 누군가, 그것도 권력도 있는 누군가가 본다면 이러한 글들의 어떻게 받아 들일지 우려가 되는것은 너무 과해석이 있는것인가 라는 마음이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한번쯤은 이 책을 보는것을 추천한다.
누군가에게는 리더로써의 또다른 방향성을 볼수있는 책이 될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정치철학 혹은 철학으로써 받아 들일수도 있을것이다.
혹은 역사적 기록으로도 볼수 있겠지.
다양한 방향성의 책으로써, 지난친 자의적 해석만이 아니라면 한번쯤은 꼭 볼만한 내용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2024년 11월 1일 금요일

책 - 살육에 이르는 병 리뷰


제목 - 살육에 이르는 병
페이지 - 360페이지
작가 - 아베코 다케마루
가격 - 13500원


살육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곳은 한 인스타그렘 릴스였다. 지나가는 수 많은 릴스 중 ‘피폐해지는 책 추천‘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추천하던 릴스, 솔직히 그냥 지나칠까라는 생각도 잠시 나의 눈을 끄는 책 제목 하나가 나왔다.
‘살육에 이르는 병’ 내가 주로 보는 책들은 대부분 심리학, 철힉, 신학들이기에 약간은 자극적인 이런 제목의 책은 유난히 시선이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릴스를 지나치고 일주일이 흘렀을 무렵, 나는 나의 하루 일정을 끝내고는 새로운 책을 사기 위하여 서점에 들렸다. 처음에는 이 책을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극적인 제목, 릴스에서 소개할때 말한 피폐해지는 내용이라는 말에 구태여 나는 내 정신을 갉아먹기 싫었기에 기억에서 잊으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왜일까, 왜인지는 몰라도 이 책을 한번은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단순한 호기심 이었는지, 아니면 근래의 삶의 자극이 부족하였던 것인지, 평소의 나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책을 서점의 직원에게 물어 구매를 하였다.
책을 구매할때 얼마나 당황을 하였는지… 책을 사는데 민증을 검사한 적은 이 책이 처음 이었다. 그렇게 구매를 하고 집에 돌아와 책을 천천히 읽기 시작 하였다.


(이 밑으로는 책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첫장 그리고 초반부분의 내용은 별다를것 없는 범죄 스릴러 같은 내용 이었다. 단순히 주인공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근래에 일어난 범죄의 범인이 아닐까하는 의심으로 시작된 그러한 시작 이었다.
주인공의 어머니의 아들의 대한 의심, 그리고 자신이 그리는 행복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
그러한 강박으로 아들을 미행하고 의심을 하는 내용이 전반에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읽는동안 이러한 내용들이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완벽한 가정을 만드려는 강박으로 가족을 얽메이는 어머니, 어쩌면 읽는 사람에게 하여금 그런 느낌을 주려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 내용들 이었다.
그럼 아들은 어떠한가? 아들은 어찌 보면 평범한, 지극히 펑범한 대학생이라고 볼수있다. 하지만 책의 결말을 읽기 전까지는 아들이 당연히 범인이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내용, 아들이 길거리의 가출 소녀들을 유인을 한다던가, 하는 내용으로 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하게끔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실제로 나또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아들이 범인 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기에 ’이걸 피폐물 소설이라 할수는 있는건가?‘라는 의구심을 품었다.
물론 읽는 독자에 따라 피폐물이라고 볼수도 있을것이라 본다.
네크로필리아적인 요소가 그득그득 담겨져 있으니 말이다. 시체윤간 장면들이 꽤나 나오고 그러한 장면에서의 주인공의 심경들을 꽤나 상세히 적고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보면서 역하다는 생각을 꽤나 많이 하였던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이 밑으로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적혀 있습니다.)


결말은 다른 의미로는 꽤나 충격적이라 할수가 있다. 여태 주인공의 어머니가 의심을 하던 아들은 범인이 아니었고 알고보니 그의 아버님, 그러니까 주인공의 어머니의 남편이 범인 이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남편이 자신의 어머니를 목졸라 죽이고 그 시체에 윤간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이 장면을 보고는 뒷통수를 쎄게 얻어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이때까지 나온 모든 서술이 아들이 아닌 남편을 이야기 하였다는 사실에 솔직히 꽤나 어이가 없기도 하였다.
어이가 없기도, 이해가 안 가기도 하여 책을 내려두고는 한 3일간은 머리가 멍한 상태로 있기도 하였다.
솔직히 추리물이나 범죄 스릴러로 보기에는 어려울것 같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감이다.
하지만 만약 단순한 피폐물이나 넼로필리아적인 약간 역한 글을 보고 싶다면 추천을 할만한 책이라고 개인적으로는 평가를 하는바이다.

 

2024년 10월 29일 화요일

인류필멸론자의 고민

 글의 제목이 상당히 직설적이고 자극적인거 같습니다만… 뭐랄까? 저의 철학관이자 인류의 미래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기에 제목을 저리 정할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그래 왜 인류는 필연적으로 멸망한다고 생각을 하느냐?’ 라는 질문에는 저는 보통 두가지 답변을 내놓습니다.
 대답을 하기에도 그리고 굳이 대답을 하여도 대화의 내용이나 여러 상황에서 이득적인 부분이 없다고 판단이 들때에는 그저 ‘인류는 끝없이 욕망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마치 이 사진의 밈과 같은 답변을 내 놓습니다. 뭐 그렇잖아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망하는 경우는 역사에 끝없게 등장하니까요. 
 그리고 두번째 답변, 두번째 답변은 보통 독서 모임이나 혹은 약간의 지적 대화를 추구할때 하고는 하는 답변 입니다. (주의 - 아직 저도 이 두번째 답변의 대한 확실한 논리를 펼치지 못 합니다. 아직 공부 중인 것이고 무엇보다 저의 지극히 편향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이 들어갔음을 밝힙니다.) 
 두번째 답변의 주된 논지는 이것 입니다. ‘인간은 수명을 늘리는 방법의 대해 지속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노화되거나 망가진 신체를 유기물, 장기 이식과 같은, 로 교체하는 방식도 사용을 하지만 무기물, 기계 팔이나 기계 심장, 과 같은 것으로 바꾸는 방식도 사용을 한다. 여기서 만일 인간이 무기물, 만일 인간이 모든 신체를 무기물의 기계로 대체하고 뇌의 정신만을 유지한다면 이를 우리가 인간이라 부를수 있겠는가? 흔히 말하는 사이보그라 명명을 한다면 이는 현인류와는 다른 종족으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더 나아가서 만일 미래에 모든 인류가 사이보그화가 된다면 이를 인류의 멸종이라 부를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논지 입니다.
 여기서 저는 두가지의 다른 방향성을 보는데
 1. 우리 인류는 정신 혹은 영혼과 신체가 대부분 유기물로 이루어져 있어야 인간이다.
 2. 사이보그의 인격이 또렷이 인간이라면 이도 우리는 인간이라 부를수 있다.
 1번의 대답은 지극히 자연법적인 대답이라 볼수 있을거라 봅니다. 어찌 되었든 인간의 태어남, 삶 그리고 죽음은 필연적이고 무기물인 로봇과 컴퓨터의 도움으로 정신을 연장을 한다고 한들 어찌 되었든 그것은 복사본의 불가하지 않냐는 방향이죠. 1번의 대답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이는 제가 생각하는 인류의 멸종이라 부를수 있는 미래를 우리는 볼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2번의 미래는 인지론적인 방향의 답변 입니다. 아무리 인류 정신의 복제품이라 할지라도 그 복제품의 원본이 되는 인간이 이미 죽고 없다면? 그리고 복제가 된 사이보그가 원본의 정신을 거진 그대로 가지고 있고 스스로 인간이라 믿는다면? 저는 이러한 미래에는 단순히… ‘유기물로써의 신체의 멸망’이라고 부를수 있을거라 생각 합니다.
 이렇게 쭉 쓰면서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네요. 반쯤 취미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만일 미래에 우리 인간이 생명 연장을 위해 유기체인 지금의 신체는 포기하고 정신을 그대로 복제를 하여 로봇으로 옮긴다면? 이라는 상상을 하다보니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인류의 미래는 아무도 모르죠. 단순히 지금의 저처럼, 그리고 다른 모든 과학자들이나 작가들이 상상을 하며 써내려 가는것이 불가 하니까 말이에요.
 어쩌면 모를 일입니다. 이런 상상이 무가치한 망상으로 지나쳐 갈지도, 어쩌면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어 사회문제가 될지도. 그 누구도 미래를 알수 없으니 말이죠.

 이상으로 반쯤 취미로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 1의 끄적임 이었습니다.
 
 -모든 의견은 존중하니 만일 의견이 있으시다면 댓글에 적어주시면 감사할거 같습니다. 또다른 공부가 될거 같다는 생각 입니다.-

Haruno_yuuni 블로그 시작

 안녕하세요. 블로그를 시작한 Haruno_yuuni라고 합니다.

 뭐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블로그를 안한지 꽤 되어서 말이죠. 중학교 2학년 시절 네이버 블로그를 잠깐 하기는 하였지만, 뭐 아시잖아요? 중2의 패기란… 하.. 당시의 글들은 여전히 네이버에 게시는 되어 있지만 당시의 필체라던가 당시의 저의 세계를 보면… 지금은 상당히 재미난, 그냥 흑역사라고 말할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다시 블로그를 왜 시작을 하였는가? 라고 물으신다면… 단순히 저의 일상적인, 그리고 저의 취미를 공유를 하고 싶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정도일거 같네요. 
아무튼… 약간의 사담을 더 곁들이자면 원래는 유튜브를 할까 고민도 하였습니다. 다만 이전에 이미 실패한 유튜브, Allium and Favian studio라는 유튜브 채널은… 뭐랄까 유튜브가 저랑 안 맞았다고 볼수 있겠네요. 구독자 4000명 가까이 모으기는 하였지만, 처음에는 요리 유튜버로 하지만 잠시 호주에 갈때 인터넷 상황상 그리고 당시 주거지의 불안정으로 요리 유뷰버 자체를 못 하여 결국에는 살며시 접혔다가, 어느 유튜버의 리뷰 영상을 보고는 나도 해 봐야지라는 패기로 하였다 쫄딱 망했다.. 라는 결말 입니다. 
당시의 영상들을 접하신 분들이 지금의 제 블로그에 방문 하실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보신 분들이라면 왜 망했는지 짐작을 하실거라 봅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 낮은 화질, 떨어지는 진행 방식 등등… 이후로 다시 유튜브를 할까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만…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래폼으로 무언가 공유를 하는 방식은 저랑은 맞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결국 여기까지 흘러 왔네요. 아무래도 글로써 무언가를 표현하는 방식이 저랑은 더 잘 맞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블로그에는 무엇을 할것이냐? 이것 역시 중요한 대목일거 같네요. 앞서 적었다시피 저의 취미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잔뜩 사담도 잔뜩 곁들인 것들을 블로그에 올릴거 같네요. 그래서 그게 뭐냐구요?
음… 차차 소개를 할것이지만 미리 올리자면 필름 카메라 작업물들, 제가 읽은 책들의 리뷰, 제가 모으는 필기구들 만년필이나 샤프같은, 그리고 간간이 쓰는 제 글들을 써서 올리는 난잡하다면 난잡한 그냥 저의 사담 창고 같은 개념의 블로그라고 볼수 있겠네요.
아무튼 제 블로그를 보실, 그리고 지나쳐 갈 수많은 사람들에게,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기록에 대하여

 나는 기록을 좋아한다. 이왕이면 오래가는 기록으로, 영원불멸의 기록을 원하기는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내가 가능한 최대한의 노력을 해보곤 한다. 찰나의 순간의 기록들, 모든 지나가는 것들을 붙잡는 기록들, 나는 그런 기록들을 좋아한...